안녕하세요. 비트퀸즈입니다.
오늘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부터 이어진 196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과 캐네디의 정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대공황의 유산 : 1930년대의 그림자
캐네디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약 30년 전, 미국은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는 경제적 재앙을 겪었습니다. 1929년 주식 시장의 붕괴로 시작된 대공황은 수백만 명의 실업자와 수천 개의 파산한 기업을 남겼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인들은 경제적 불안과 불신에 깊이 시달렸고, 이 경험은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 경제 정책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는 유명한 뉴딜(New Deal) 정책을 통해 대공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경제적 회복은 완전하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시 경제가 그 회복을 가속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다시 한번 경제적 도전과 직면했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도, 경제는 여전히 불안정했고, 대공황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대공황이 왔던 원인 두가지만 짧게 보고 가겠습니다.
대공황의 이유
1. 과잉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1920년대 미국은 산업화와 기술 혁신으로 인해 생산력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자동차, 가전제품 등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많은 기업들이 과잉 생산을 했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특히,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된 물건을 구매할 소비자가 부족해졌습니다. 이는 결국 재고 과잉과 기업의 수익 감소로 이어졌고,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졌습니다.
1920~30년 사이의 과잉생산은 제2차 산업혁명의 여파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870년대에서 1914년 사이에 전개된 이 시기는 전기, 화학, 석유, 철도 등 새로운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또 다른 생산력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전기 모터와 내연 기관이 도입되면서 공장 생산 방식이 크게 변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기술혁신이 기업화되는 시기였습니다.
2. 주식 시장의 버블과 붕괴
1920년대 후반, 미국의 주식 시장은 과열 양상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주식 시장이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라고 믿고,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러나 주식 가격은 실제 기업의 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거래되었고, 이는 거대한 버블을 형성했습니다. 1929년 10월, 주식 시장이 붕괴하면서 대규모 금융 손실이 발생했고, 이는 금융 시스템 전체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다우존스만 봐도 1950년대가 되어서야 1930년의 가격을 회복했으니, 1960년대에도 역시 대공황의 그림자가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초반의 경제 상황
1. 전후 경제와 냉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과 아시아에 비해, 미국의 경제는 상대적으로 강력했고, 이는 미국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후 복구 과정과 냉전의 시작은 미국 경제에 새로운 압력을 가했습니다.
냉전 시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소련과의 군사적 경쟁 외에도 경제적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미국은 자본주의 경제의 우월성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중산층의 확장과 경제적 기회의 평등이라는 문제에 직면했으며, 이는 사회적 불안정과도 연결되었습니다.
2. 경기 침체와 실업률
1960년대 초반, 미국 경제는 두 가지 주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첫 번째는 경기 침체(recession)였고, 두 번째는 높은 실업률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은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상승하면서 경제적 불안정이 증가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던 대공황의 여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캐네디는 강력한 경제 회복 정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캐네디의 비전
캐네디는 이런 배경 속에서 미국이 경제적 리더십을 유지하고, 국내적으로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달성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경제 성장이 미국의 대외적인 위상을 강화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
그는 공공 지출을 늘리고, 세금 감면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도모하려 했습니다. 특히, 그는 케인즈 경제학의 원리를 받아들여, 경기 침체기에 정부가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이었고,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 혁신과 현대화
캐네디는 미국 경제의 현대화를 통해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는 과학 기술 혁신과 인프라 투자를 통해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우주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여 미국이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했고, 이는 경제 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FRB와 미국 정부와의 긴장
캐네디는 정부가 통화정책에도 더 많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추진했으며, 이는 FRB가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금리 정책과 충돌할 수 있는 요소였습니다. 당시 FRB는 통화 공급과 금리를 관리하는 독립 기관으로서, 경제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 인상 등 긴축적인 통화 정책을 선호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196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은 1930년대의 미국의 대공황의 여파가 남아있었으며, 캐네디는 케인즈주의 학파의 이론을 받아들여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경제를 재건하고자 했습니다. 정부 재정과 지출의 확대는 FRB와의 긴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캐네디가 암살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